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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내시경 지난주엔 대장내시경을 했다. 젊은 나이에 벌써하냐고 주변에서 한마디씩 했다. 나는 요즘 자꾸 설사해서 혹시몰라서요 라고 반응했다. 3일전부터 씨있는 과일, 해조류, 나물 등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검사전날 점심에 죽을 먹고나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거기에 장정결제를 먹고 그날은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근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워낙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들어서인가 나는 너무 수월해서 뭐지?... 걱정까지했다.
부동산 보고 온 날 나는 지금 회사 관사에 산다. 지난해 10월에 들어와서 5개월 정도 살았는데 다음달이면 복무만료라서 이제 새로운 방을 구해야 한다. 곧 나갈거니까 처음 입주했을 때부터 방에 관심이 적었다. 문제점이 있어도 딱히 신경쓰지 않았었다. 전자제품도 사지 않았고, 형광등 조명은 다소 어두운데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다행이었던 것은 바퀴벌레는 없었다. 처음 관사에 왔을 때, 바로 위층에 사는 동료 선생님이 방에서 가끔 바퀴벌레가 나온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5개월동안 본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제는 불을 끄고 누워있는데 바퀴벌레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놀라서 불을 켰는데 바퀴벌레가 움직이다 말고 가만히 있었다. 후우..... 멘붕... 아무튼 잘 해결(?)을 했는데 해결하고 나..
검색어 내 성씨는 특이하다. 지금까지 같은 반, 그룹에 나랑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을 본적이 없다. 아주 가끔씩 같은 성씨인 사람을 만나는데, 그러면 굉장히 애착이 느껴진다. 괜히 챙겨주고 싶다. 누군가는 학연, 혈연, 지연 이런 거 사라져야 한다 말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만 막상 같은 성씨를 만났을 때는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간다. 성씨가 특이하지만 이름은 되게 흔하다. 같은 이름을 많이 만났다. 대학교 때는 나랑 같은 이름이 3명이었다. 이름을 부르면 헷갈리니까 성과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나는 ‘선민’이라고 불리었고 다른 친구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성씨 + 민’ 으로 불리었다. 나는 덕분에 대학생 때 여러 이름으로 살았다. 가끔씩 호기심에 인터넷에 내 이름을 검색해 본적 있다. 초등학교때도 그랬고 중학..
아까운 돈 유난히 아까운 돈이 있다. 주문한 옷 사이즈가 맞지 않아 반송해야 할 때 내는 택배 반송비, 급하게 현금이 필요해서 어쩔수없이 내는 편의점 ATM 수수료, 갑작스레 내린 비에 사게 된 우산 값, 버스를 놓쳐 타게 된 택시 요금, 로켓배송 최소 금액을 채우지 못해 내게 된 2500원의 배송비 등등 내가 또 아깝다고 생각했었던 돈이 있었는데, 부끄럽게도 기부금이었다. 대학생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기부를 시작했다며 내게 이야기 한적이 있다. 남미의 빈민 아이들 지원을 해주는 단체에 기부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대학생이었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쓰는 입장에서 기부를 한다는 생각을 나는 전혀 하지 못했었는데, 그 친구는 용돈을 쪼개서 기부를 했다. 그 단체는 기부를 하면, 남미의 아이를 한..
두 사이트 나는 휴대폰을 자주 본다. 중독이라고 느낄 정도다. 얼마나 심하냐면 드라마나 예능을 볼 때도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다. 쥐고 있지 않으면 어색하다. 가끔은 너무 심각하다고 느껴서 폰을 저 멀리 던져버리기도 하지만, 어느새 다시 가져와 본다. 휴대폰으로 특별하게 하는 건 없다. 브롤스타즈라는 휴대폰 게임, 유투브 시청, 인터넷 기사 보기, 그리고 자주 접속하는 커뮤니티 2개를 무한 반복한다. 특히 요즘은 코로나19때문에 전국이 난리니까 두 커뮤니티를 돌아보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본다. 하지만 두 커뮤니티의 성향이 완전 다르다. 여기서 성향이 다르다는 것은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 찬반이 명확히 갈린다는 것이다. 아니 찬반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각 커뮤니티의 주 의견과 다른 의견을 누군가가 제시하면 그 사람은..
좋아하는 것 살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그것보다 훌륭한 것이 많은데 고작 그런 것에 만족하다니, 바보구나."라고 말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방심하고 있었는데,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굳이 알려주며 어떻게든 내 손의 바나나를 시시해 보이게 만들려는 사람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말을 듣지 않는다. 먹어볼 만큼 먹어봤어도 내겐 바나나가 제일이었고, 지금까지 못 먹은 과일은 앞으로도 먹을 일이 없을 테니까. -김보통, 행복은 바나나-
행복은 콩국수 행복은 콩국수 행복이란 콩국수와 같다. 내겐 그렇다 달짝지근한 국물에 시원한 얼음 여러개, 면도 탱탱해서 끊어 먹기도 편하다. 양도 적당하며 식감도 부드럽고, 영양성분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잘 조화되어 있다(?). 자세히 찾아보진 않았지만 좋을 것이다. 맛있는 건 몸에 좋으니깐. 어렸을 때 콩국수가 너무 좋아서 하루 세 끼 콩국수를 먹은 적도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누군가가 물어보면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만큼의 확신은 없다. 식욕이 떨어진건가 아니면 그 당시 어머니가 해주던 콩국수가 아니라서 그런가 모르겠다. 어렸을 때 콩국수를 자주 먹던 내게 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너 임신했을 때 그렇게 콩국수가 먹고 싶더라. 그래서 엄청 자주 먹었는데... 그..
90년생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리 집은 작은 판자촌으로 이사했다. 지붕은 파란색, 빨간색,초록색 같이 단색으로 되어있었고 10여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런 곳이었다. 내 또래도 있어서 심심하면 그 집 앞에서 ‘00아 놀자~’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는 어렸고 다른 친구들이 어떤 집에 사는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난 내 삶이 자연스러운거라 생각했다.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자라면서 영화관에서 ‘우리 집’과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집을 봤다, 사람들이 그 곳을 ‘판자촌’이라 부르며 ‘가난해서 불쌍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 후로 우리집이 가난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지금은 그게 IMF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당시는 몰랐다. 지나고보니 이상했던 점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