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작문연습

(9)
작문연습 - 포스트 코로나 내겐 7년 된 가장 친한 친구가 있다. 이름은 강민수, 경기도 하남에서 작은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며, 나랑은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어머니 또한 민수를 알고 있을 정도로 내 유일한 친구다. 근데 이 친구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지어낸 아이다. 초, 중, 고 시절 나에겐 친구가 없었다. 나는 주말에는 집에만 있고, 평일에는 학교, 학원만 오가는 삶을 살았다. 그때부터 나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셨고, 항상 한숨을 쉬며 걱정하셨다. 그러던 어느 주말, 그날은 평소와 달리 오전부터 나갈 준비를 했다. 학교 역사 수업의 조별과제 발표 준비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집에만 있는 내가 나갈 준비를 하니까 어머니가 되게 궁금해하셨다. “아들, 오늘 친..
행복은 콩국수 행복은 콩국수 행복이란 콩국수와 같다. 내겐 그렇다 달짝지근한 국물에 시원한 얼음 여러개, 면도 탱탱해서 끊어 먹기도 편하다. 양도 적당하며 식감도 부드럽고, 영양성분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잘 조화되어 있다(?). 자세히 찾아보진 않았지만 좋을 것이다. 맛있는 건 몸에 좋으니깐. 어렸을 때 콩국수가 너무 좋아서 하루 세 끼 콩국수를 먹은 적도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누군가가 물어보면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만큼의 확신은 없다. 식욕이 떨어진건가 아니면 그 당시 어머니가 해주던 콩국수가 아니라서 그런가 모르겠다. 어렸을 때 콩국수를 자주 먹던 내게 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너 임신했을 때 그렇게 콩국수가 먹고 싶더라. 그래서 엄청 자주 먹었는데... 그..
90년생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리 집은 작은 판자촌으로 이사했다. 지붕은 파란색, 빨간색,초록색 같이 단색으로 되어있었고 10여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런 곳이었다. 내 또래도 있어서 심심하면 그 집 앞에서 ‘00아 놀자~’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는 어렸고 다른 친구들이 어떤 집에 사는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난 내 삶이 자연스러운거라 생각했다.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자라면서 영화관에서 ‘우리 집’과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집을 봤다, 사람들이 그 곳을 ‘판자촌’이라 부르며 ‘가난해서 불쌍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 후로 우리집이 가난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지금은 그게 IMF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당시는 몰랐다. 지나고보니 이상했던 점들이 있었다...
ㅇㅇ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아오 오글거려.. 도대체 이런 멘트는 누구한테 배운거야?’ ‘왜?? 멋있잖아. 난 우리가 자랑스럽거든’ 그녀는 그랬다. 오글거리는 문장을 서슴치 않게 말했다. 처음엔 너무 부끄러워서 애써 못들은척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려니 했다. 사람이란 동물이 정말 신기한게 반복되면 뭐든지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익숙해진 말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그 부재는 더욱 크게 와닿는다. 그날은 출근하지 않았던 날이었다. 사실은 근무였는데 사정상 그녀가 대신 해주기로 했다. 부모님은 은퇴 후에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자그마한 땅을 사셨다. 그리고 그 땅에 고구마, 고추, 상추 등을 심으셨다. 이번 가을에 그동안 자란 고구마를 수확한다면서 나를 집으로 부르셨다..
나때는 말이야 ‘나때는 말이야’ 내가 신입사원일 때 회사 상황이 어땠는지 이야기해주려고 말을 꺼냈다. ‘선배 요즘 그런 말 누가 써요’ 친한 후배 녀석 한명이 그런 말 쓰지 말라고 꼰대 같다고 내게 조언했다. 난 이 문장을 떠올리면 대학 때 만났던 친구 한명이 생각난다. 그 친구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였다. 춤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였는데 유난히 밝은 아이였다. 동기들, 선배들한테 유난히 잘했으며, 처음 본 사람이랑도 낯가림 없이 이야기하는 친구였다. 그 당시 우리 동아리에는 선배들이 참 많았다. 한 선배는 공연이 끝나면 뒤풀이에 와서 동아리의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곤 했다. ‘나 때는 말이야 동아리 해체 직전까지 갔어, 공연도 힘들고 지원은 없고 내가 그 때 노력 많이 했지’ 나는 이 선배의 이야기가 어느 순..
내게 천만원이 생긴다면 길었던 2년간의 취준생 생활을 끝내고 작년 취직했다.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회사였는데 한동안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다. 하지만 몇 달 전 인사발령이 나서 조금 먼 곳으로 가게 되었다. 걸어서 지하철 역까지, 지하철로 3~4정거장을 거쳐, 버스를 갈아 타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몇 주 간 통근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승용차 구매를 생각하게 됐다. 여유자금에 맞춰서 차량을 구매하려고 결정했을 무렵, 친구와 함께 일산 킨텍스로 놀러 가게 됐다. 그곳에선 G사에서 신규 출시한 자동차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역동적인 우아함, 14.5인치의 증강현실 네비게이션, 깔끔한 내장 디자인 등을 강조한 것이 인상깊었다. 친구와 함께 시승을 했다. 코너링도 깔끔했고 내부 디자인은 정갈했고 실내 공간은 넓어서 ..
어머니를 묻던 날 어머니를 묻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맞바람이 치는 야산 언덕이었다. 강추위라고 뉴스에선 떠들어댔지만 느끼지 못했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기숙사 사감님이 전화가 왔다며 나를 부르셨다. “어머님이 위독하시다” 작은아버지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하루를 같이 보냈기 때문이다. 교복을 입고, 저녁 10시에 동아병원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내가 도착하자 의사선생님은 결정을 내리셨다.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확실성으로 그 언저리에 와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누나도 울고 동생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 이후로 이따금 나는 꿈을 꿨다. 어머니가 돌아오는 꿈, 사실 모든 것이 장난이었다는 꿈 꿈 속에서 나는 다시 꿈을 꿨다. 그 꿈은 가..
수상소감문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 사실 시상식 오기전에 주변에서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너 상 받을 수도 있으니 수상소감문 준비해가라’ 뭐 이런 식의 이야기였는데요. 근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상소감문 준비를 못했습니다. 정말 게으르죠? 프로그램도 다 끝나고, 다음 작업 들어갈 때까지 시간도 충분히 있는데 말이죠.. 귀찮거나 바쁘거나 뭐.. 그래서 그런 건 아니구요.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기대하면 결국 실망하게 되니깐요. 다소 부정적으로 들리겠지만, 제가 피디가 되면서 그리고 피디라는 직업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감정입니다. 이 직업을 시작도 하기 전에 저는 여러 좌절을 느꼈나 봅니다. 지원하는 족족 결과는 불합격,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