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7년 된 가장 친한 친구가 있다. 이름은 강민수, 경기도 하남에서 작은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며, 나랑은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어머니 또한 민수를 알고 있을 정도로 내 유일한 친구다. 근데 이 친구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지어낸 아이다.
초, 중, 고 시절 나에겐 친구가 없었다. 나는 주말에는 집에만 있고, 평일에는 학교, 학원만 오가는 삶을 살았다. 그때부터 나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셨고, 항상 한숨을 쉬며 걱정하셨다.
그러던 어느 주말, 그날은 평소와 달리 오전부터 나갈 준비를 했다. 학교 역사 수업의 조별과제 발표 준비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집에만 있는 내가 나갈 준비를 하니까 어머니가 되게 궁금해하셨다.
“아들, 오늘 친구들이랑 약속 있는 거야?” “네.. 친구랑 카페 가기로 했어요”
어머니는 입꼬리가 귀에 올라가면서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면서 용돈으로 5만 원을 주셨다. 그 때처럼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날 카페에 도착했을 때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친구들은 나를 ‘요구르트 보이’이라 불렀다. 어머니가 학교 앞에서 요구르트 배달을 하셨기 때문이다. ‘요구르트 보이’이라는 별명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 자격지심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내 천성이 그랬는지 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었다. 체육복은 이따금 사라졌고, 내 자리는 낙서로 가득했다. 어느 날 나를 데리러 온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셨다. 낙서로 가득한 내 자리, 나를 보고 비웃는 아이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나를 향한 욕설. 그 날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죄인이었다. 어머니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 사회에 필요 없는 사람.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
그날 이후로 처음 어머니가 웃는 모습을 보았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니까 환히 웃어주고, 약속에서 돌아오고 나서는 “어떤 친구니? 그 친구는 어디 살아? 너랑은 꽤 친하고?” 라며 궁금해하시며 소고기를 구워주셨다. 무려 한우였다. 나도 모르게 ‘민수’라는 이름을 꺼내버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민수는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어머니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매주 주말 약속을 잡았다. 어머니께는 민수랑 놀러간다고 말씀드리고, 혼자 영풍문고에 들러서 책을 읽고, cgv에 가서 혼자 영화를 봤다. 맥도날드에서 빅맥까지 먹고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는 웃는 모습으로 나를 마중하셨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주말이면 숙제같이 나가던 외출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어머니를 속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어머니의 기대는 여전히 충족시킬 수 있다는 만족감이 함께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종종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야 니가 민수 만날텐데 말이야”라면서 이 사태가 얼른 끝나기를 바라고 또 바라셨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미 사회로부터 거리가 있는 내게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내 처지에 당위성이 생기고, 더 이상 내가 비정상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그 선물 같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뉴스를 보니 5월까지는 유지된다고 하니, 그때까지 난 쓸데없는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기간이 끝나면 나는 다시 사교성 있는 척, 친구가 있는 척 연기를 하러 사회에 나갈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그 시점에 나에게 진정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