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리 집은 작은 판자촌으로 이사했다. 지붕은 파란색, 빨간색,초록색 같이 단색으로 되어있었고 10여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런 곳이었다. 내 또래도 있어서 심심하면 그 집 앞에서 ‘00아 놀자~’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는 어렸고 다른 친구들이 어떤 집에 사는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난 내 삶이 자연스러운거라 생각했다.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자라면서 영화관에서 ‘우리 집’과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집을 봤다, 사람들이 그 곳을 ‘판자촌’이라 부르며 ‘가난해서 불쌍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 후로 우리집이 가난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지금은 그게 IMF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당시는 몰랐다.
지나고보니 이상했던 점들이 있었다. 다소 충격적이었던 장면들도 기억이 났다. 한 번은 주말에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이 되게 혼란스럽게 떠드는걸 본적이 있다. 지난 밤에 옆집 아저씨가 목을 매 자살한 것이었다. 나는 듣기만 했을 뿐, 실제로 목격한 것은 아니었어서 그런지, 그 기억은 내 머릿속 구석에 접히고 접혀있어 이제야 잠깐 생각난다.
그곳에서 종종 돼지를 직접 잡기도 했다. 도끼로 돼지 목을 따고, 불이 나오는 이상한 기구로 돼지의 피부에 갖다댔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거슬리고 무서웠고 돼지가 불쌍했지만 고기는 맛있었다. 울음을 뚝 그치고 누나와 동생과 고기를 먹고는 했다.
이곳이 편한 점도 있었다. 가끔은 열쇠를 잃어버려 대문을 열지 못할떄는, 그냥 아무데서나 가위를 하나 빌려와서 문을 땄다. 가위 하나면 문이 열리는 그런 집이었다. 또한 근처 사는 또래 친구와는 둘도 없이 친해졌다. 매일 놀 수 있었고 부모님들이 안계시면 친구집이든 우리집이든 한 곳에 모여 놀았다.
그곳에서 나는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 자랐다. 2학년때 학교 근처로 이사했고, 이제 알록달록 지붕은 없어졌다. 더 이상 가위로 대문이 열리지 않았고 종종 들리던 돼지 멱따는 소리도 없어졌다.
가난은 그렇게 나로부터 멀어진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가난을 딱히 느끼지 못했다. 배를 굶지는 않을 정도의 가난이었고, 고기가 먹고 싶으면 먹을 수는 있는 삶이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돈 때문에 선생님한테 맞지도 않았고, 친구들의 놀림을 받지도 않았다. 단지 하나 기억나는 건,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오는 내게 친구가 ‘넌 왜 맨날 똑같은 옷 입어?’ 라고 물었던 일이다. 친구는 놀리려는 의도 없이 궁금해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얼버무리자 더 이상 물어보지는 않았으니깐. 하지만 그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 친구랑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멀어졌다가 수능을 보고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그 기억 때문에 그리 살갑게 그 친구를 대하진 못했다. 그 때의 앙금이 남아있나보다.
가난이 서러운 건 별거 아닌 친구의 ‘한마디’가 영원토록 기억에 남아있고 또 이걸 소재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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