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겐 해리겔, <마음을 쏘다, 활>
날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수월하게 활쏘기의 ‘위대한 가르침’을 드러내는 의식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의식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마치 꿈을 꾸듯 의식에 인도됨을 느꼈다. 거기까지 선생님의 예언은 입증이 된 셈이다.
그러나 활시위를 놓는 순간, 정신이 흐트러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최대로 활을 당긴 상태에서 기다리며 머물러 있는 일은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이내 팔의 힘이 빠지고 또 매우 고통스러워서 나는 자꾸만 자기 몰입의 상태에서 벗어났고, 자연히 활을 발사하는 일에만 온 신경이 쏠렸다.
“발사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은 나에게 충고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당기고 있을 수가 없어요.”
“당신이 진정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통의 대나무 잎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눈이 쌓이면 대나무 잎은 점점 더 고개를 숙이게 되지요. 그러다가 일순간 대나무 잎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데도 눈이 미끄러져 떨어집니다. 이와 같이 발사가 저절로 이루어질 때까지 최대로 활을 당긴 상태에 머물러 있으세요.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최대로 활이 당겨지면, 발사가 저절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발사는 사수가 의도하기도 전에, 마치 대나무 잎에 쌓인 눈처럼 사수를 떠나가야 합니다.”